이재용의 미르재단 출연은 왜 뇌물이 아닌가?

[최윤수의 법률 팩트체크] 박근혜 1심 '삼성 제3자뇌물제공 무죄' 판결 분석

  • 기사입력 2018.04.16 01:53
  • 최종수정 2018.04.16 13:04
  • 기자명 최윤수

2018년 4월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형이 선고됐다. 공소사실 상당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었으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받고,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을 받는 방법으로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부분은 무죄였다.

출처: 한겨레

이미 2018년 2월 5일 선고된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및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은 뇌물공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뒤이은 2018년 2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는 최순실(개명 후 이름 최서원)에게 징역 20년형·벌금 180억원·추징금 72억9427만원을 선고하면서도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및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 관련한 뇌물수수는 무죄로 인정했다. 따라서 최순실 재판과 동일한 중앙지법 제22형사부에서 공범인 박 전 대통령에게 이 부분 무죄 판단을 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러나 판결 선고 후 삼성만 봐줬다는 비난이 거세다. 특히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한 것은 뇌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같은 재단에 출연한 것이 왜 무죄인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까지 선고된 관련 판결에서 이 부회장이 정유라의 승마지원을 한 부분은 뇌물죄로 인정되었는데, 대체 어떤 이유로 뇌물죄의 유, 무죄가 갈리는 것일까.

우선 적용한 법규정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형법 제129조 제1항은 공무원이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한 때에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는 공무원이 비공무원과 공모하여 직무에 관한 뇌물을 수수하는 것도 인정해 왔다. 이 형법 제129조 제1항을 적용해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이 비공무원인 최순실과 공모하여 이 부회장에게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요구하고, 실제 지원을 받아 뇌물을 수수했다고 인정된 것이다.

그런데 영재스포츠센터나 재단 출연은 최순실이나 박 전 대통령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접 공모한 공범이 아닌 제3자이므로, 형법 제129조 제1항이 아니라 형법 제130조가 적용됐다. 이 경우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아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된다.

즉,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에 따라 재단 출연의 유, 무죄가 갈린 것이다. 롯데그룹의 경우 경영권 분쟁, 월드타워의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 문제였다. 신동빈 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그 대가로 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고 인정됐다. SK의 경우에도 면세점 특허,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가석방 추진, CJ헬로비젼 인수 합병이라는 현안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최태원 회장과 독대하면서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안종범 경제수석을 통해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자료를 주면서 협조요청을 했다. 이 역시 박 전 대통령이 부정한 청탁과 관련한 뇌물을 공여하도록 요구했다고 인정됐다. 다만, SK는 재단 출연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아 실제 출연을 거절했으므로 최태원 회장은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할 현안으로 삼성그룹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개별적인 현안으로는 ①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②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③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 ④ 삼성테크윈 등 4개 비핵심 계열사 매각, 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⑥ 엘리엇 등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⑦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⑧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을 꼽았다. 또한 또다른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경영능력 입증을 통한 후계자로서의 위상 강화를 위하여 ⑨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투자 유치 및 환경규제 관련 지원이라는 개별적 현안이 있었고, ⑩ 메르스 사태 및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제재 수위 경감 추진도 개별적인 현안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모두 독대 시 명시적인 청탁이 없었다고 했고, 달리 명시적 청탁을 추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결국 묵시적인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문제다. 묵시적인 청탁은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직무집행 대가라는 점에 당사자 사이의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인정된다.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 없이 막연히 선처해 줄 것이라는 기대나 다른 동기가 있었을 뿐이라면 인정되지 않는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도12313 판결 참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부는 개별 현안 중 상당 부분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전에 이미 해결되어 종결되었거나 이 부회장이 청탁하지도 않고 삼성그룹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서 이에 관한 박 전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재단 출연의 대가성에 대한 상호 인식을 부정했다.

또한 나머지 개별현안에 대해서는 '말씀자료'에 기재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안종범, 정호성의 증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말씀자료의 내용을 항상 발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시 언급되었다고 볼 수 없고, 안종범이 작성한 수첩 기재로 청탁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보았다. 또한 삼성 측에서 개별적 현안의 해결을 위하여 노력한 사정이 피고인에게 보고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묵시적 청탁을 부정했다.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김세윤 부장판사는 판결 선고 중에 언론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삼성그룹의 승계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였고, 일반인 입장에서는 승계작업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승계작업이 있었다는 점은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여전히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삼성그룹 승계는 사회적 이슈로서 이 부회장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승계 관련한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보고서가 작성되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삼성 승계를 모니터링하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이에 대하여 인식하였을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승계작업이 있었는지 불명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일반인들도 모두 삼성그룹의 승계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형사처벌 요건으로서의 승계작업은 없었다고 본 셈이다. 삼성 승계에 대한 금감원, 공정위,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보고서가 작성되었고, 김영한 민정수석이 승계를 모니터링 하고 있었음에도 더 어떤 증거가 있어야 “승계작업”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는다.

최윤수   hmyschoi@haemarulaw.com  최근글보기
2005년부터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일하고 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 법률자문위원을 맡았다. 2006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조중동 불매운동 사건을 맡았고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담당 변호사로 피해자를 변호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