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의 게임은 왜 재미가 없을까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5.23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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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항공기는 압도적인 속도 덕분에 장거리 여행에 있어 최우선의 선택지로 고려되지만, 그 경험이 마냥 유쾌한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비싼 돈을 내고 비즈니스나 퍼스트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하지 않는 한, 대체로 이코노미 좌석의 좁은 환경과 시끄러운 항공기 소음 속에서 여행의 시간은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한 잔 마시고 푹 자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막상 그런 비좁은 환경에서 잠드는 일도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여행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할 거리를 들고 타는 경우들이 있다. 책을 읽거나, 휴대기기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식이다. 실제로 많은 민항기들은 좌석 앞의 디스플레이 기기를 통해 최신영화나 음악을 제공하여 갑갑한 좌석의 물리적 피곤을 넘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장치의 정식 명칭은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장거리 비행의 지루함을 달랠 중요한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장치다. 신문이나 잡지에 머무르던 과거에 비해 기내 엔터테인먼스 시스템 등장 이후의 장거리 비행은 한결 편안한 환경으로 승객들을 이끌었고, 이제는 거의 개봉 시점에 근접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 국내 항공사가 개인 디스플레이를 통해 제공하는 게임들.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비행기 안의 게임들이 재미없는 이유들

그런데 시간 보내기로 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디지털게임은 어떨까? 몇몇 항공기의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컨트롤을 위한 리모콘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리모콘의 뒷면에는 작은 조이스틱과 게임패드의 버튼을 떠올리게 만드는 컬러 버튼이 달려 있다. 기기 자체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 기능을 탑재한 기기들을 우리는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적지 않게 만나보곤 한다.

하지만 막상 해당 게임들을 플레이하기 위해 게임 메뉴로 들어간 이들을 반기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게임과는 조금 거리가 먼 메뉴들이다. 제공되는 게임들은 무척 단순한 수준이고, 조작 인터페이스는 실제 플레이해 보면 뭔가 싱크도 잘 맞지 않는다. ‘테트리스’, ‘팩맨’ 같은 검증된 고전 게임들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장거리 비행을 충분하게 커버해 낼 수준을 기대하고 포함된 게임 같지는 않다. 기기 안에 포함된 영화나 음악이 최신작까지 서비스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다소 초라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게임은 지루하고 갑갑한 이코노미의 시간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항공사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듯 싶다. 게임이 툭 하면 비난받는 주요한 지점 중 하나인, 과도하게 사람을 몰입시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이코노미 장거리 비행에 적용하면 긴 비행시간을 손쉽게 스킵하는 기술로 자리할 수 있을 것임에도 딱히 기내 게임 서비스의 퀄리티 향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그리 높은 하드웨어 스펙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장치는 기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영화와 음악의 재생이 가능한 수준까지의 기기 스펙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어지간한 개인용 태블릿 PC와 비교해도 크게 부족한 스펙이다.

사실 안전이 최우선순위인 항공기의 장비 세팅에서 엔터테인먼트 기기의 스펙을 중심에 두는 것은 쉬운 결정이 되지 못한다. 1998년에는 전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설치를 위해 배선을 설치하던 스위스에어 111편 MD-11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사고 원인이 개인용 디스플레이 설치를 위한 배선의 합선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사 결과는 운항과 안전 외의 장비를 설치할 때 늘어나는 리스크가 결코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안전 이외의 장비들은 따라서 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추가되며, 쉽사리 디스플레이 장치들을 신규 스펙에 맞게 개선하거나 교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개인용 휴대장치들이 더 높은 스펙을 가지면서도 상당수준 보편화된 상태에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오히려 굳이 이 장치를 설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회의에 다다르는 상태로, 별다른 이슈 전환 없이는 스펙의 강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몇몇 항공사들은 개별 디스플레이 대신 기내 와이파이를 도입하여 승객들이 보유한 스마트기기를 통해 항공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알아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으로 선회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최신 영화, 최신 음악처럼 최신 게임을 탑재하는 것은 기술적 장벽을 만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콘텐츠만 항공사가 보유하고 개별 기기에서 플레이되는 방식이라면 최신 게임을 구비해 두고 미러링 등을 통해 플레이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정확한 가격대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개별 결제가 이루어지는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일종의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되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게임 납품은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개발사 입장에서 굳이 별도의 노력을 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의 문제도 한 숟가락을 더한다. 순천향대학교 이정엽 교수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내의 게임들이 국내의 경우 일반PC게임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 PC보다 떨어지는 사양에 맞춰 개발 또는 이식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에 맞춘 간략한 등급/심의 절차가 아닌 PC게임과 같은 수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는 매우 귀찮고 비효율적인 일이 된다는 것이다.

대단한 게임의 탑재가 이루어지진 않았어도, 콘트롤러 뒷면에 아날로그 스틱과 게임버튼이 달려 있다는 것은 이 기기에 게임이 꽤나 잘 어울리는 소재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긴 여행을 줄이는 것은 비단 항공역학만은 아니다

장거리 비행의 지루함을 달랠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의외로 장시간의 비행을 가장 효율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게임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내 탑재가 어려운 점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플레이 리모컨의 뒷면에 스틱과 버튼이라는 게임 특유의 입력장치가 존재한다는 점은 기내에서 최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서비스, 혹은 비즈니스 측면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루하고 긴 여행을 빠르게 잡아당기는 것은 비단 항공기술만의 발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긴 시간을 보다 빠르게 지나가도록 만드는 편의와 안락의 기술 발전에도 기대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언젠가는 항공기 안에서도 괜찮은 수준의 게임을 즐기게 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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