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합의 반대" 일본평화위원회의 양심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05.2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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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 관련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한 주가 지났다. 이런 국면에 요구되는 것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사태를 신중하게 지켜보는 자세. 이러한 당위를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필자의 흥분은 일본평화위원회의 지사카 준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진정되었다. 어떤 상황에도 ‘평화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사람들이 끝내 지혜로운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태도는 분 단위로 흘러나오는 보도에 일희일비하던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사카 사무국장이 활동하는 일본평화위원회는 최근 동북아시아 평화를 둘러싼 논의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있는 일본에서, 역설적이게도 4ㆍ27 판문점선언을 가장 뜨겁게 환영하고, 남북정상회담으로의 지난한 여정을 한반도의 사람들 못지않게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시민단체다.

일본평화위원회는 한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평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왼쪽이 지사카 준 사무국장. 일본평화위원회 제공.

홍상현:

일본평화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일본 시민사회의 주축이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지사카 준:

일본평화위원회는 다시는 침략전쟁의 길을 걷지 않고,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핵무기 참화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1949년 탄생한 시민 단체다. 당시 냉전이 격화되던 가운데 미일 정부는 전쟁의 방기를 호소한 일본국 헌법을 외면하고 일본을 미국의 군사동맹에 편입, 재군비 추진을 가속화했다. 우리 단체는 이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결성되었다. 현재도 특히 핵무기 폐기, 평화헌법 옹호, 미군기지 철거, 미일 군사동맹 폐기, 동북아시아 비핵 평화 실현 등에 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홍상현:

무척 놀라운 것은, 일본평화위원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애초부터 반대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연대활동도 하고 있다던데.

지사카 준: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한일 합의에서 아베 총리는 이른바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이 진지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심각한 인권유린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진행하고, 그 사실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야한다. 그런 일 없이 “최종적 해결”은 있을 수 없는데, 일본 정부의 자세는 이에 위배된다. 일본평화위원회는 이러한 자세를 비판해 왔으며, 매년 한국 피스 투어(peace tour)를 통해 한국의 시민들과도 교류를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평화위원회는 매년 한국피스투어를 개최하며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일본평화위원회 제공

홍상현:

일본평화위원회는 언제나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올바른 입장을 견지해온 까닭에 극우파 등으로부터 “매국노 집단”이라고 매도당하는 일도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지사카 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건실한 나라가 되려면 과거 군국주의에 의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이 불가결하기에, 이를 부인하는 비정상적 세력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총리 같은 극우세력이야말로 일본의 품위를 더럽히는 부끄러운 존재다.

 

홍상현:

판문점 선언 당시 이른바 ‘일본의 양심세력’ 가운데서도 “북미정상회담 이후로 평가를 유보하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일본평화위원회는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사카 준:

우리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의 휴전상태를 종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 또한 불가결하다. 판문점 선언은 이러한 방향을 명확하게 내세움으로써 북미정상회담이 목표로 해야 할 방향성을 명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홍상현:

한국의 시민들은 최근 일본의 아베 정권 퇴진 운동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완전한 정권 교체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실제로도 그저 자민당 총재가 바뀌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않을까?

지사카 준:

바로 그렇다. 극우 사상과 헌법 9조(평화헌법) 개악,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를 최대의 정치적 신조로 하는 아베 총리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자민당에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 자민당 내에서의 ‘정권 돌려막기’가 아니라 시민과 애당의 연대를 통해 ‘아베 노선’의 근본적 전환을 지향하는 정권을 실현해야한다.

 

홍상현:

일본평화위원회는 지난 총선거 당시부터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자민당 정권과 맞서고 있다. 시민단체도 하나의 정치적 행위자로 올바르게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인데. ‘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정치개혁을 위한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인가.

지사카 준:

일본평화위원회는 평화를 요구하며 모인 시민들의 공동체로써,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바꾸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정당과 연대ㆍ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또한 현재, 헌법 9조 개악과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를 추진하는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민과 야당의 연대가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의 요구가 정책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연대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지사카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총리관저 앞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어떤 반전평화운동의 현장을 가더라도 마주칠 수 있는, 그를 비롯한 일본평화위원회 회원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굳건한‘평점심’의 뿌리에 대해서.

현재 일본 전역에 2만 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이 단체는 1949년 결성되었다. 연합군총사령부(GHQ)가 침략전쟁을 위한 국가총동원체제의 경제적 축이던 부역 자본가들을 복권시키고, 정치적 축이던 대정익찬회의 잔존세력, 자유민주당이 총선거에서 264석을 점유, 단독정권 추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그 해, 중국공산당은 베이징에 입성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출범했으며, 한반도에서는 미군 철수와 조선노동당 창당이 이루어졌다. 또한 맥아더가 일본을 ‘반공의 방벽(bulwark)’이라고 못 박은 직후 구소련은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했다. 모두 같은 해에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요동치던 국제정세는 냉전체제에 편승한 암흑정치의 부활과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때로는 사상 검증, 때로는 애국심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직간접적 탄압에 맞서 일본평화위원회가 걸어갈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아베 신조로 이어지는 일본 극우정치의 계보는 ‘핵무기 경쟁(the nuclear arms race)’으로 상징되던 동서냉전을 자양분으로 자라났다. 자유민주당이 소선구제를 기반으로 55년 체제라는 철옹성을 쌓아올리고, 권력과 자본에 결탁한 거대언론은 그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던 현상 속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는 끈기는 그들의 싸움을 지탱해준 가장 큰 에너지였으리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한 바로 이튿날 일본평화위원회가 지사카 사무국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의 한 구절은 이러한 필자의 판단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포함한 평화의 틀을 함께 추구하는 끈질긴 교섭 이외에, 이 지역의 평화를 실현하는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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