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에 임했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진심은?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6.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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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간의 정상회담이 무사히 성사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평화의 새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영어로 the Summit이라고 표기되었는데, summit이란 단어는 '(산이나 언덕의) 정상' 혹은 '절정'의 의미다. '더하기'라는 뜻의 영어단어 sum과 어근이 같다. 무언가를 더해 나가다보면 가장 높은 곳, 즉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은 영어로 summit meet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인지 고유명사처럼 the Summit이란 멋진 이름으로 불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만난 순간에 나눈 대화 중에는 꽤나 의미심장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양 정상들끼리의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feel really great. It’s gonna be a great discussion and I think tremendous success. I think it’s gonna be really successful and I think we will have a terrific relationship I have no doubt,” 

기분이 정말 좋다. 위대한 논의가 될 것이고 엄청난 성공을 기대한다. 정말 성공적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아주 멋진 관계를 만들어 나갈 거라 의심치 않는다.

 

트럼프는 really, great, tremendous, terrific, no doubt 등 상당히 격정적인 어휘를 통해 북미회담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일반적인 국가원수다운 화법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화법을 즐기는 트럼프임을 고려해도 상당히 파격적으로 보인다. 

그가 말한 tremendous와 terrific이란 단어는 사실 같은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다. 이 단어들의 라틴어 어원 tremendus는 '공포감 때문에 덜덜 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tremendous(살이 떨릴 정도로 엄청난), tremble(덜덜 떨다), terrible(공포스러운), terrific(멋진) 등의 단어들이 파생했다. tremendous는 '엄청난', '대단한' 정도로 해석되지만, 사실 big, huge, great 등보다 훨씬 더 강한 느낌의 단어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엄청나게 크거나 대단한 일을 묘사하는 형용사다.

terrific(훌륭한, 멋진)이란 단어는 'terror(공포)를 불러일으키는'이란 뜻을 가졌지만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terrible은 '공포스러운', '경악스러운' 등의 부정적 의미인 반면, terrific은 '무서울 정도로 훌륭한' 정도의 긍정적 의미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마주한 첫 느낌은 그야말로 '살 떨릴 정도로'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평소 과장이 심한 어법을 구사하는 트럼프임을 고려해도, 그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모두발언 내용은 좀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회담 현장의 음향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김 위원장 발언의 영어통역을 정확히 보도한 외신은 많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한국어 발언과 영어 통역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The past worked as fetters on our limbs, and the old prejudices and practices worked as obstacles on our way forward. But we overcame all of them, and we are here today.

 

우선 김 위원장은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란 표현을 썼다. (통역관은 '그릇된'이란 뜻의 wrong 대신, '낡은' 혹은 '오래된'이란 뜻의 old를 사용해 the old prejudices and practices라고 옮겼다) 지난 세월 한반도 긴장의 역사가 북미가 공히 가지고 있는 '잘못된 편견과 관행' 때문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rejudice라는 단어는 '미리' 혹은 '이전의'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pre와 '판단'이나 '판결(judgment)'을 뜻하는 어근 jud가 결합되어 '미리 판단함' 즉 '근거가 밝혀지기 전에 성급히 판단함'의 뜻을 나타낸다.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단어들로 judge(판사), judicial(사법적인, 재판의), judicious(신중한, 판단력 있는) 등이 있다. 편견은 '만나서 겪어보기 전에 마음대로 내린 판단'이다. 두 정상이 실제 만났으니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그릇된 편견(wrong prejudices)"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기를 바란다. 

우리가 '연습하다' 혹은 '연습'이란 뜻으로 잘 알고 있는 practice는 사실 간단한 단어는 아니다. practice는 '행동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practicare에서 비롯되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 이상의 깊은 뜻을 가진 어휘다. 사전에는 practice의 의미가 '실천', '실행', '연습', '관행', '관습', '전문직의 업무' 등 다양하고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practice의 근본적인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다' 정도가 된다.

서양 사상의 근간은 '이상'과 '현실'의 2분법적 세계관이다. 철학, 학문, 종교, 이상 등 추상적인 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practice다. 그래서 practice의 반대말은 theory(이론), ideal(이상) 등이 된다. 결국 추상적인 생각을 현실에서 '실행'하고,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하며, 배운 이론을 '반복해서 연습'하여 체득하는 것이 practice다.

의사나 변호사 등이 개업을 하면 practitioner라고 부른다. 상당한 수준의 이론이나 학문을 현실의 환자 혹은 소송사건에 대입하여 실현시키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뜬구름 잡듯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사구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practical(현실적인, 실용적인)이라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그릇된 관행들"이란 말은 old practices로 번역되었다. 만일 김 위원장의 의도를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는 old 대신 wrong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the wrong practices'

이 말을 앞서 정의한 practice의 개념에 대입해 풀어보면, '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는 잘못 구현되었고, 그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반성이 될 것이다. 즉, 북한이나 미국 양측의 본래 의도나 진심 등이 현실에서는 편견과 오해로 곡해되어 왔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영어 통역사가 김정은의 발언 직후 바로 통역을 한 것으로 보아, 모두발언을 사전 검토 후 미리 번역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상대방의 선의에 대해 '눈과 귀를 가리지' 말자는 것이 김정은의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That's true.라고 화답하며 오른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과연 편견으로 왜곡되어 온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고 양국의 선의가 제대로 구현될 것인지 이제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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