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보호하는 게임 주인공...나이 들어가는 게이머 세대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7.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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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갓 오브 워’

올 상반기에 출시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의 대표 액션 어드벤처 게임 ‘갓 오브 워’ 는 여러 모로 2018년 최고의 게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게이머들의 찬사 속에 빛나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앞선 시리즈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을 직접 두들기며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주인공 크레토스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이었다면, 이제 그 신화는 오딘과 토르가 살아 숨쉬는 북구 신화로 넘어온다. 별다른 부가 설명 없이도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게임 진행 속의 절제된 묘사와 대사들은 차가운 북풍의 땅에 펼쳐질 새 모험에 놓인 주인공의 무뚝뚝한 분노를 묵직한 액션과 함께 담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당대의 수작 반열에 게임을 올려 놓았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배경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퀘스트 일지 등의 저널이나 주인공의 독백 대신 ‘갓 오브 워’ 는 일종의 조력자로 함께 모험하는 캐릭터인 아들 아트레우스를 내세운다. 신을 때려잡을 정도의 주인공 크레토스는 게임 안에서 아이템 상자를 발견해도 다른 게임들처럼 곱게 상자를 여는 대신 상자를 때려부수고(!) 물건을 꺼내는 배드애스 캐릭터인데, 이렇게 거칠고 무뚝뚝한 사내는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아들이라는 존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게임 시작 때 이미 세상을 떠나 있는 크레토스의 아내이자 아트레우스의 어머니의 부재는 이 부자의 여정을 상실로부터 시작하게 만드는 지점이며, 상실감의 두 부자는 아버지로서는 뭔가 어색해 보이는 거친 주인공이 연약한 아들을 때로는 지키고 때로는 그 아들의 성장으로부터 도움받는 과정 속에 변화해 나간다.

무뚝뚝하고 냉정한 크레토스는 전투의 신이지만 아이를 돌보는 면에서는 그리 훌륭해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이 둘의 관계가 성장하면서 ‘갓 오브 워’는 부자간의 관계를 통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갓 오브 워’ 에서 모험을 이끌어나가는 중심 축으로 두 부자의 관계는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관계가 비단 ‘갓 오브 워’ 만의 독창성으로부터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최근 수작으로 평가받는 여러 게임들이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게임 안에서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게임 안에 가족관계가 나타난 것이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지만 최근의 방식들은 과거의 게임 속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려는 시도들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족이라는 면에서 ‘갓 오브 워’와 함께 살펴보기 좋은 게임은 ‘라스트 오브 어스’다.

 

‘라스트 오브 어스’ 의 유사 가족: 점차 가족이 되어가는

같은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는 알 수 없는 곰팡이 번식으로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면역체를 보유한 것으로 판명된 소녀 엘리를 보호하며 면역체 개발이 가능한 곳까지 데리고 가는 여정을 다룬다. 주인공 조엘은 폐쇄된 격리구역 바깥에서 물건을 밀수하며 살아가는데, 밀수품의 일부로 부탁받은 아이 엘리를 보며 투덜거리면서도 이동 과정에서 점차 아이와의 교감을 쌓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조엘과 엘리는 가족관계가 아니지만, 이들을 유사 가족으로 만드는 배경은 게임 시작 부분에서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 초기에 주인공 조엘이 공권력의 총격에 의해 어린 딸을 잃는 장면으로부터다. 딸의 죽음이 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비뚤어져버린 조엘 앞에 잃어버린 딸이 그대로 있었다면 이정도였다 싶을 나이의 소녀가 나타나고, 그 소녀와 함께하는 여정이 ‘라스트 오브 어스’의 중심을 차지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설고 거칠었던 관계는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 속에 점차 마음을 여는 관계로 발전하며, 이는 마지막 엔딩까지 이어지면서 새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게임 안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두 게임은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는 부모-자식 중 부모의 입장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식은 플레이어 캐릭터와 함께 움직이는 동료 캐릭터로 자리한다. 게임 진행의 동료이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컨트롤하는 것은 제한되고, 아트레우스와 엘리는 가끔 제멋대로 행동해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플레이어를 당황스러운 상황에 몰아넣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지점은 가족이라는 개념이 게임 플레이 안에 직접 들어온다는 두 게임의 공통점이다. 단지 가족을 위해 모험을 떠난다거나 사로잡힌 가족을 구한다는 게임 바깥의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제 가족은 실제 게임플레이 안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와 함께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에 대해 쏟아진 찬사는 비단 훌륭하게 구현된 게임 세계 뿐 아니라 딸을 잃은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비슷한 또래의 소녀와 교감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부터도 기인할 것이다.

 

게임 플레이 속의 가족관계 – 부모가 되어 가는 게이머 세대

게임 플레이를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며, 꽤 오랫동안 여러 게임 안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그 조력자가 동료나 신, 스승이나 외계인이 아닌 가족, 그것도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가 아닌 자신이 돌봐야 하는 자녀의 형식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조력자라는 포지션이 단순히 무적 기믹의 누군가가 플레이를 돕는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살펴야 할 동료, 혹은 지켜야 할 대상으로서의 의미와 겹친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의 게임 ‘ICO’에 등장하는 조력자 겸 보호대상이었던 요르다의 의미는 이제 가족, 그것도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자식의 의미로 변화했다.

왜 하필 자식이었을까? 해석의 갈래는 여러 가지겠지만, 어느새 비디오게임의 시대도 더 이상 젊은 축에만은 들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80년대 비디오게임 전성기를 청소년 시기에 겪었을 게임 세대는 이제 장년기에 접어드는 추세다. 50대를 넘어가는 이들 세대의 자녀들인 지금의 20대 대학생들 상당수가 첫 게임의 경험을 부모의 지도로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우리가 언뜻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청소년들로만 구성된 계층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비단 비디오게임 1세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90년대 후반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맞았던 이들이 학부모가 되고, 외려 그들의 자녀들보다 게임 실력으로 압도하는 모습들이 간간이 커뮤니티에 올라온다는 것은 적지 않은 게이머가 이제는 부모세대로 불려도 어긋나지 않는 시기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젊은 세대보다 나은 소비력을 쥔, 유년 시절의 게임 경험을 간직한 이들의 중장년화는 게임이 제공할 공감의 요소들로 현실에서 상당히 강력한 감정의 소재인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심경을 사용하기 좋은 시대로 만들었다. 적지 않은 게임들의 조력자는 이제 풍부한 맥락을 통해 내 마음대로 쉽게 통제되지 않고 가끔은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반드시 보호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플레이어와 함께 성장하고 관계의 변화를 이루는 대상인 ‘자녀’ 로 등장한다. 이러한 캐릭터 구조에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은 아무래도 게이머 집단에서 자신을 부모의 위치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난 시대여서가 아닐까 싶다.

 

한때 게임 속 부모-자식 관계를 이야기하면 ‘워크래프트 3’의 아서스 메네실과 그의 아버지 테레나스 메네실과 같은 고정된 서사로서 배경으로만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배경으로서의 가족관계는 이제 좀더 강한 공감의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실제 플레이의 영역 안으로 치고들어와 현실에서 부모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좀더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게임 플레이 안에 인간의 관계를 녹여내려는 시도들을 보이고 있고, 갈수록 그 발전의 성과 또한 두드러지고 있다. 게이머도, 게임 제작자도 어느새 한 세대가 넘어가는 시점의 이러한 흐름들이 갖는 남다른 의미들도 곱씹어 볼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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