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축구 심판은 referee라고 불릴까?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7.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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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팬들을 밤잠 설치게 만드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는 비디오 판독관이 축구 심판 referee의 판정에 개입하는 VAR이라는 제도가 화제다. 한국 팀이 스웨덴에게 허용한 패널티 킥은 VAR(비디오 판독)의 결과였다. 주심은 정상적이라 판단했던 김민우의 태클이 VAR에 의해 파울로 번복된 것이다. 축구 경기에는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 제도가 한국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VAR은 Video Assistant Referee를 줄인 말인데, assistant는 조수, referee는 심판의 뜻이다. 그래서 VAR은 '동영상으로 보조하는 심판' 정도의 의미가 된다. 야구나 테니스 경기의 주심은 umpire, 피겨스케이팅이나 체조의 채점관은 judge인 반면, 축구 심판은 referee로 불린다.

네이버 사전에 보면 referee는 1) 스포츠 경기의 심판, 2) 추천서를 작성해준 추천인, 신원보증인, 3) 분쟁 등의 중재자, 4) 학술 논문의 심사위원 등의 여러가지 뜻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어원을 따져보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다.

referee는 동사 refer에서 파생된 단어다. refer는 '다시'의 뜻을 가진 접두사 [re-]와 '옮기다' 혹은 '보내다' 정도의 뜻을 가지는 어근 fer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즉, '다시 옮기다' 혹은 '다시 보내다' 정도의 의미다. 결정을 기다리는 사안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보내'서 처리하도록 하는 행동을 말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refer의 의미가 1) 조회하다 2) 참조하게 하다 3) 주목하게 하다 4) 위탁하다 5) ~로 귀착시키다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된다. refer처럼 짧은 단어에 왜이리도 복잡한 뜻이 여러 개나 존재하는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게다가 이 단어가 포함된 문장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렵고 해석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다시 보내다'라는 어원적인 뜻을 기억하면 모든 의미를 쉽게 추론해 낼 수 있다.

Example 1) He referred me to the secretary for information.
(그는 나한테 비서에게 문의하라고 했다.)

- 위 문장은 정보를 요청하는 나를 본인이 상대하지 않고 비서에게 '다시 보냈다'는 의미다. 우리말로는 '문의하다', '참조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어감은 아니다. 

 

Example 2) The asterisk refers to a footnote.
(* 별표는 각주의 표시이다)

- 별표(asterisk)는 footnote 쪽으로 '다시 옮아간다'는 뜻이다. 즉, 별표는 footnote로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mple 3) Don't refer to the matter again.
(그 일은 다시는 언급하지 마세요.)

- 이야기하고 있는 화제를 그 사안(matter)으로 '다시 돌리지' 말라는 문장이다. 우리말로는 '언급하다'로 해석했지만 속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참고문헌이라는 말을 할 때 refer의 명사형인 referenc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논문의 특정 부분이 저자 본인의 주장이 아니라 참고문헌의 저자에게서 차용한 내용이라는 표시다. 그래서 그 내용에 대한 독자의 판단은 저자에게 직접 따질 것이 아니라 참고문헌에게 물으라는 것이다. 독자는 각주에 표시된 참고문헌으로 독자들의 의문사항이나 비판을 '다시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축구 심판은 어쩌다 referee라고 불리게 됐을까? referee는 '다시 보내다'의 refer에 '~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ee]가 조합된 형태다. 한마디로 '다시 보낸 것을 받는 사람' 정도의 의미다. 

인터뷰(interview)를 하는 사람은 interviewer, 당하는 사람은 interviewee가 된다. 고용하는(employ) 사람은 employer, 고용당하는 사람은 employee라고 부른다.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nominate)당하는 사람은 nominee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당연히 심판 없이 축구를 했다. 반칙 등 갈등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옥신각신 따지느라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플레이에 대한 최종 판정을 제 3자인 누군가, 즉 심판에게 '다시 보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심판권을 받게 된 사람은 판정권을 부여받은 사람, 즉 referee로 불리게 된 것이다.

referee는 또한 '신원보증인' 혹은 '추천인'의 의미로도 쓰인다. 추천서는 어떤 지원자의 자질과 능력을 보증하는 문서다. 그가 지원한 학교나 회사는 그 추천서를 써준 사람의 평가를 근거로 지원자를 평가한다. 즉, 지원자는 학교나 회사의 평가 근거를 본인이 아닌 추천인에게 '다시 보내는' 것이고, 추천인은 그 임무를 떠맡게 된다.

사전에 나오는 referee의 여러가지 뜻은 모두 이렇게 추론을 통해 정리된 것일 뿐이다. 전혀 다른 뜻을 네댓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단어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어근 fer가 포함된 단어들은 자주 사용되는 것들이니 따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 trans[between 둘 사이] + fer[보내다] = transfer (옮기다, 이송하다)
-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 in[안으로] + fer[보내다] = infer (속뜻을 살펴보다, 추론하다)
- 사물이나 사안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내적 속성으로 사고와 판단을 향하는 것을 추론이라고 한다.  

 

  • pre[먼저] + fer[보내다] = prefer (선호하다, 더 좋아하다)
- 먼저 보내는 것은 앞세우는 것이다. 뭐든지 더 좋아하는 것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 con[함께] + fer[보내다] = confer (상의하다, 줘서 보내다, 수여하다)   
- 혼자 보내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함께 보내면 서로 상의해서 일을 처리할 것이다. 상을 수여하는 것 역시 상을 수상자에게 '딸려 보내는' 행위이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 대표팀은 FIFA 랭킹 세계 1위 독일을 잡았다. 스웨덴전에서 허용한 패널티 킥만 없었어도 우리는 조별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 경기 외에도 VAR 때문에 경기 결과가 크게 뒤바뀐 경기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과연 VAR에게 축구 경기의 심판권을 refer하는 것에 세계 축구팬들이 동의하게 될 지는 지켜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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