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 그의 영화 혹은 자유를 위한 투쟁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07.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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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례를 무릅쓴 단언으로 시작해 보자.

‘야쿠자 영화의 신경지’라는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무척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물론 ‘임협(仁侠)영화’라는 ‘폼 나는’ 별칭을 가진 ‘일본판 조폭영화’ 장르는 무려 9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듯, 셀 수 없는 작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는 <의리 없는 전쟁>(1973)이 개봉하던 해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본다.

그나마 ‘최근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핫 한 감독’이라는 연출자에 대한 평가도 별 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수많은 한국영화들을 누르고 전국의 멀티플렉스를 장악, 개봉 9일 만에 650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현실에서 장르영화에, (억울하게도) 자칫 다양성 영화로 분류될 가능성마저 있는 작품의 감독과 나눈 이야기가 한국의 관객들, 가까이는 이 글의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폐막식에서 EFFF(European Fantastic Film Festivals Federation) 부문 심사위원들에게 특별 언급될 만큼의 완성도를 지녔다 하더라도.

'고독한 늑대의 피'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머니가 일하던 홋카이도의 밥집에 한 장의 포스터와 함께 건네진 영화표가 영화인생의 시작이었던, 이 고집스런 외모의 사내에게 시선을 두어야할 이유는 있다고. 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 모두 진흙 속의 연꽃을 찾아 헤매는 장인의 이야기가 먼지 가득한 서재에 놓인 소설의 한 구절만큼이나 귀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홍상현:

우선 말해두고 싶은 건 <고독한 늑대의 피>와 <의리 없는 전쟁>시리즈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데다, 영화의 등장인물도 죄다 악인뿐이잖은가. 후자와 유사한 것은 오히려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Outrage)> 시리즈지. 한국영화 <투캅스>(1993)의 ‘다크 버전’ 같은 두 사람의 형사를 보며 내가 느낀 매력은 악당의 외피를 쓰고, 시종일관 선과 악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DC코믹스의 히어로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 ‘고전’에 대한 오마주야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라이시 카즈야:

말씀하신 대로다. <의리 없는 전쟁>같은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제작사 측의 주문이야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비슷한 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내 나름의 경의는 표하되 현재의 내가 만들어야 할 영화를 만들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차별성을 두고 싶었던 거다.

'고독한 늑대의 피' 포스터

 

홍상현:

<도쿄의 실낙원>(2009)으로 데뷔한 이후 연출한 8편의 작품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4편(<흉악, 어느 사형수의 고발>(2013), <암고양이들>(2016), <타락경찰 모로보시>(2016), <이름 없는 새>(2017))이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중 세 편은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사회 저변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이 버블경제기 동안 황금만능주의가 확산되다 장기불황이 이어진 일본의 사회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시라이시 카즈야:

물론이다. 버블경제기를 말씀하셨는데 나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영화계에 있으니 무척 제한적인 사례밖에 볼 수 없었지 모르지만, 일단 당시 영화를 만들던 선배 세대와 그 이후 영화계에 들어온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일단은 제작비 규모부터. 잘 생각해보면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에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반면, 역설적이게도 그런 풍요를 경험한 선배들이 몰락하는 사례도 적잖이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은 내가 시대와 영화의 관계에 주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홍상현:

그 와중에 일본 독립영화의 거장이자 68혁명 세대의 대표주자, 와카마츠 코지 감독으로부터 사사 받은 일도 영화에 대한 당신의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시라이시 카즈야:

와카마쓰 감독은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니까. 당신께서 살아온 시대적 환경이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자유로움이란 무엇이고, 창작이란 무엇인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고민한 분이셨다. 반면, 지금의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유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겠다는 점을 통절히 느끼고 있다.

 

홍상현:

역시나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는가. 그래서인지 당신의 작품에서는‘영화 만들기’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으니 일단은 주어진 경제적 상황(예산)과 조건(제작사의 요구)을 활용한다는 면에서 최소한의 타협을 한 뒤,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메시지나 표현하고 싶은 영화적 세계관을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시라이시 카즈야:

정확한 지적이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다들 비슷한 작품을 기획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내 경우 그런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 곳에 표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느끼기에 고군분투를 하게 되더라도 일반적인 흐름으로부터 독립적인 작품의 방향을 견지해 가고 싶다. 누군가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대히트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나름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 존재해야 영화적 표현도 발전할 테니까. 다만, 그런 영화들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더딘 걸음이라도 조금씩 앞을 향해 나가려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오히려 그 편이 관객들에게 더 어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또한 있기에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홍상현: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일관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충격적인 것은 하나같이 ‘법의 범주에사 벗어나 있는(outlaw)’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보통'이나‘ '무난한'같은 형용사가 붙는, 즉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과 거리가 멀다. 계급적으로는 어떤 기득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에다.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당신의 의도와 연관되는가.

시라이시 카즈야:

그렇다. 나는 내 영화적 서사가 가장 낮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데뷔작인 <도쿄의 실락원>도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권력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비판하는 시선도 중요하다. 아울러 나 자신 그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시고, 어머니와 둘이 살았으니까. 당시의 내가 느낀 세상의 시선도 작품들에서 나타난다.

'고독한 늑대의 피' 한 장면.

 

홍상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름 없는 새들>도 소박한 행복을 꿈꾸지만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다. 지극히 평범한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레이 존(중간지대)에 서있는. 최근작인 <고독한 늑대의 피>에도 그런 인물상이 반영되어 있나.

시라이시 카즈야:

오늘날의 일본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인물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뒤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과 부딪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이상,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써 올바르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따라서 <고독한 늑대의 피>의 문제의식은 야쿠자나 형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다만, 경찰이란 결국 국가권력의 말단에 있는 존재이므로 전형성을 탈피해 표현하는 것이 아웃 로(outlaw)라는 방향성에 부합할 거라고 판단했다.

 

홍상현: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의 작품속에서 표현되는 사회상은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디스토피아적이기는 하다. 오늘날의 일본 사회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시라이시 카즈야:

별로 좋은 사회가 아니지. 아베(그는 시종일관 ‘총리’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가 저렇게 나쁜 짓을 하는데. 한국 사회라면 예컨대 ‘구속ㆍ수감’ 같은 결말을 볼 수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일본에서 그런 결말은 볼 수가 없다. 야권이 오랜 기간 열세였던 까닭에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었던 면도 있고. 폐쇄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홍상현:

정치적으로 다소 과격한 발언인데 그대로 게재해도 괜찮을까.

시라이시 카즈야:

괜찮다. 상관하지 않는다. 작가라면 다소 과격하다는 평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작가 자체가 많지 않다. 문제다.

한국은 촛불 집회에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세금을 내고 선거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 사회의 경우 정치참여에 있어 부족한 점이 있다. 일본 민중은 승리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파시즘에 억눌려있었고, 다이쇼데모크라시도 결국 군부에 짓밟히지 않았나. 그 군부도 결국 패전했지만. 뒤에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민중이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해서, 자유로운 가운데 살고 있을망정 무엇 하나 스스로 얻어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정치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부족한 거지. 무력감도 만연해있고. 특히 예전 자민당의 경우 내부에서 파벌끼리 견제라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 사라졌다. 말기적이다.

 

'고독한 늑대의 피'의 한 장면.

 

홍상현:

분위기가 좀 무거우니 화제를 돌려보자. 당신의 작품에서는 최근의 일본 상업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표현이나 내용의 한계점(무난하고 규격화된 느낌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라이시 카즈야:

항상 아슬아슬하게 한계의 극한까지 치닫는 작품을 만들다 보니 제작사에서도 ‘시라이시니 영화니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 같다. 그렇게 허용되는 범위라는 자체를 조금씩 넓히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미리 정해 놓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조금씩 넘어서다 보니 어느새 제작사들도 적응을 하게 된 것 아닐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을 반복할 작정이다.

 

홍상현:

이를테면 송곳으로 빙판의 한쪽을 계속 두드려 결국 금이 가게 만들 듯이?

시라이시 카즈야:

그렇지. 조금씩.

 

홍상현:

올해 나이 마흔 다섯,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과 막 촬영을 마친 작품까지 포함해 무려 열편이나 되는 작품을 만든 중견감독이다. 후배들의 무척 신망도 두터운 것 같던데, 영화를 향해 질주하는 아시아의 영화청년들에게 해 줄 말이 있나.

시라이시 카즈야:

영화는 자유로운 매체다. 그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가 있고. 영화를 만드는 건, 보는 것보다 150배쯤 더 재미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나서주었으면 한다. 또한 영화를 통해 ‘자유 혁명’을 일으켜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다룬 영화를 많이 만드는 한편,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향에도 주목해주었으면 한다.

 

폐막식을 마치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던 그에게 물었다. “가끔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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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해산한 아이돌그룹 <스마프(SMAP)>의 멤버, 카토리 싱고가 주연한 신작 <나기마치(凪待ち)>의 촬영을 끝내고 아직 피로도 풀리지 않았을 상태에서 바다건너 부천으로 와 준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하소연이 아니라 태산처럼 든든한 미소였다. 그리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갑내기 감독 나홍진의 작품들과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김성수의 <아수라>(2016), 황정민과 마동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언젠가, 충무로에서 만든 그의 작품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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