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다툼이 드러낸 '이웃의 인종차별주의자'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08.16 08: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월 4일 토요일 캘리포니아 도시 오클랜드의 주택가. 어느 집 앞에서 집주인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과 근처 친구네 파티에 놀러 온 중남미계 이민자 가족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여성은 해당 가족에게 자신의 집 앞에 주차한 차를 빼라고 요구했다. 차를 빼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가족 중 젊은 남성이 나서서 항의했다. 누구나 주차할 수 있는 곳에 주차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남의 집 앞이지만 사유지가 아닌 도로 가장자리 주차는 통상 금지 표시가 없는 한 합법인데 당시 해당 집 앞 도로 가장자리는 공용주차 공간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계속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했다.

양측의 다툼을 재구성했다.

 

여: 차 빼! 좋은 말로 할 때. 경찰 부른다?

남: 맘대로 하세요. 불러요 불러!

여: 예의 있게 굴어!

남: 예의 갖추고 있잖아요! 경찰 부르든 맘대로 하세요. 여기 공용주차구역이거든요.

여: 증거로 사진 찍겠어.

남: 하세요! 대체 뭐가 문제죠?

여: 내가 그걸 얘기해줄 의무는 없지.

남: 우린 그저 주차했을 뿐이거든요. 당신 사유지 침범한 것도 아니고요.

여: 너희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남: 그게 무슨 상관이죠?

여: 내가 이민변호사(an immigration attorney)거든.

남: 우리 합법 거주자(documented resident)에요.

여: 거주자(또는 영주권자)가 시민권자는 아니지.

남: 경찰 불러요. 부르라고요.

여: 경찰들이 어떻게 할 줄 알아? 너희들 잡아 갈 거야.

남: 경찰이 우리 절대 못 데려가요! 이 일이 확 퍼져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남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군요. 완전히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는 걸.

여: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언급에 뜨끔했는지 반박하려는 듯) 함께 사는 내 파트너가 어디 출신인지 알아? 멕시코에서 왔어.

남: 당신 파트너가 어디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요.

 

결국 주차를 했던 가족은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백인 여성과의 다툼이 이어지자 남성은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며칠 뒤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자신을'(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 출신의 오클랜드 주민이자 고등학생' 조든 코르도바(Jordan Cordova)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상황 설명과 더불어 백인 여성의 정체를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동영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14일 현재 조회 건수는 52만을 넘었고 1만2000명이 공유했으며, 1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단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해당 여성을 가리켜 인종차별주의자임을 감추고 있었던 위선자라고 비난하기도 했고 일부는 거칠게 욕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 가여운 인종차별주의자 바보들은 트럼프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자신들이 기어 나온 돌 틈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알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 이름 Maria Valencia

 

“그녀 스스로도 트럼프와 그의 전체 가족과 마찬가지로 미국 이민자다.”
페이스북 이름 Melelo Zaongara

댓글에서 트럼프를 언급한 사람들의 인식은 '인종 차별, 이민자 차별을 상징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마약과 범죄를 (미국에들여오고 있으며또한 성폭행범들(rapists)”이라고까지 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한 뒤 실제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대통령이 되자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와 달리 불법 체류자 단속과 추방을 크게 강화해왔다.

조든이 올린 동영상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해당 여성이 누구인지 밝혀졌다. 현지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여성의 이름은 레슬리 프랭클린(Lesleigh Franklin) 박사. 심리학자이자 지역에서 심리상담(치료)기관을 설립하고 이끌며 활동해왔으며 많은 이민자들의 심리 상담 업무를 해온 인물이었다. 이민자들을 도우며 지역 발전에 공헌해 온 것으로 알려진 지식인이 알고 보니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비난이 들끓자 그녀는 대표직을 사임하고 물러났다.

프랭클린 박사의 파트너(동거인)이자 같은 기관에서 일해온 마리솔 레이나(Marisol Reyna)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건 직후 조든 가족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들이 방문한 이웃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며 나중에 사과문도 냈다고 해명했다. 동영상을 올린 조든은 13일 필자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주고 받은 메시지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사과)성명은 냈다”고 전했다. 프랭클린 박사의 개인 웹사이트와 그녀가 설립한 기관의 웹사이트는 모두 14일 현재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