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자살'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인가 아닌가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09.04 15: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서 야마가 뭐야?"

기자 시절 데스크로부터 제일 많은 들은 말이다. 야마는 일본말로 '산 혹은 톱의 날끝이나 나사'다. 언론계 은어로 기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말한다. 야마잡기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언론의 관행이었다.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 야마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권장사항을 넘어 필수요건이었다. 야마가 불분명하면 편집자가 제목을 달기 힘든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야마가 확실한 기사는 독자들이 핵심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는 장점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 제한된 신문 지면, 혹은 1분짜리 방송 리포트에서 야마는 곧 기사 그 자체였다. 그런데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도 야마잡기 관행은 여전하다. 박창섭 전 한겨레 기자는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는 책을 2012년에 내며 한국언론의 고질적 병폐로 야마를 지적했다. 야마를 보면 언론사의 지향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조중동'과 '한경오'라는 단어는 언론사의 정파적 입장차에서 비롯됐지만 언론사 특유의 야마잡기가 이런 진영논리를 강화한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에서는 사실상 분량 제한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을 기사에 소개할 수 있지만 야마잡기는 여전히 성행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야마에 기사 끼워맞추기다. 야마에 반하는 사례는 버리고 야마에 부합하는 사례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관행은 '기사 마사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야마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지만 작동 방식은 동일하다. 야마를 잡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저널리즘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한국경제가 삭제한 기사 캡쳐본

갑자기 '야마'란 생경한 단어를 꺼내든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된 한국경제 기사 때문이다. 이 기사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언론의 다양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사건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자. 한국경제는 8월 24일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포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갑자기 기사를 삭제했다. 가짜뉴스 논란이 불거졌다.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결과 대전에서 그런 사건은 벌어진 적이 없었다. 파장은 이어졌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인용해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비판했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jtbc 토론에 나와 해당 기사를 인용했다가 민주당으로부터 가짜뉴스를 인용했다고 비판을 받았다. 여러 언론과 유튜버들이 이 기사를 인용했다. 

'가짜뉴스'를 생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한국경제는 취재과정을 밝힌 두 개의 기사를 발행했다. 첫번째는 '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두번째는 '"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경은 "가짜뉴스 논란은 매우 유감"이라며 "기사 작성의 취지나 의도를 무시한 채 마치 한경이 허위 사실을 날조해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한 소득주도성장에 흠집을 내려 했다는 식의 일부 보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즉,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가 아니고 정상적인 취재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일부 사실관계만 틀린 기사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경 같은 주류 언론사는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인가 아닌가.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인가 아닌가

가짜뉴스(fake news)는 201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합의된 정의는 없다. 2017년 2월 세미나에서 박아란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가짜 뉴스는 작성 주체에 상관없이 허위의 사실관계를, 고의적 의도적으로 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 형식을 차용하여 작성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 주류 언론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박 위원은 "주류 언론은 가짜 뉴스 생산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만에 하나 나쁜 마음을 먹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가짜뉴스의 개념화와 규제수단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가짜뉴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상업적 또는 정치적 목적에서 타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담긴 정보,

2) 수용자가 허구임을 오인하도록 언론보도의 양식을 띤 정보,

3) 사실검증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능이 배제된 가운데 검증된 사실처럼 허위포장한 정보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언론재단에서 발간한 <가짜뉴스 현황과 문제점> 연구서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콘텐츠 생산이 급격히 증가한 환경에서, 원본과 작성 주체의 불명확성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이용자가 믿을 수 있는 뉴스 형식을 갖춰 신뢰를 얻은 후, 정파적 혹은 경제적 목적으로 내용을 의도적으로 교묘히 조작하여, 한눈에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소셜 미디어, 모바일 메신저 등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확산을 의도한 뉴스”

종합하면 대체적으로 가짜뉴스로 분류되려면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①내용이 거짓이어야 하고 ②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독자를 속이려는 목적성이 있어야 하며 ③기사 형식을 갖춘 것이다. 

위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대체적으로 ①번 '내용의 거짓 여부'는 사실확인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1인저널리스트가 되는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 ③번 '기사양식'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루머와 가짜뉴스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②번 '속이려는 의도'다. 독자를 기만하려고 했는지 여부는 해당 콘텐츠를 생산한 사람만 알 수 있다. 이후에 콘텐츠를 접한 사람은 정황증거로 추정만 할 뿐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규정하기도 쉽지 않고 잘못 쓰이는 경우도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과 뉴욕타임스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라고 비난을 하는 이유는 해당 매체의 보도가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ZD넷의 김익현 기자는 '가짜뉴스라는 말, 이젠 좀 그만 씁시다'라는 기사에서 "의도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쓰지 않는 한 오보도 성실한 보도활동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오보와 가짜뉴스를 구분해서 쓰자는 말이다. 

미국의 보수언론 폴리티컬 인사이더가 보도한 기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슬람국가에 무기를 팔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위 사진은 버즈피드가 집계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뉴스 2위(78만9000번 공유)에 오른 폴리티컬 인사이더의 기사를 캡쳐한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민주당 고위층 이메일을 공개했는데 힐러리가 테러리스트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리비아에 무기를 판매했는데 그 무기 중 일부가 IS에 흘러 들어간 것이 진실이다.

폴리티컬 인사이더는 가짜뉴스 사이트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미국의 보수성향 언론이다. 위키리크스가 민주당 고위층 이메일을 공개한 것도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힐러리가 리비아에 판매한 무기가 IS에 흘러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힐러리가 직접 IS에 무기를 판매하지는 않았다. 이 기사가 독자를 속일 의도가 있었는지는 추정만 할 뿐이다. 하지만 미국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설령 오보라고 하더라도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경 기사에서 야마는 어떻게 작동했나

다시 한국경제 기사로 돌아가보자.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인가 오보인가. 한경은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진짜 의도는 기자와 데스크만 알고 있다. 그러면 한경의 해명기사를 보고 추정해보자. 한경은 한달동안 '2018 자영업 리포트'라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다 경기 침체 여파로 벼랑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담은 시리즈"였다고 밝히고 있다. 기자 본인이 밝혔듯이 최저임금과 경기침체가 자영업이 힘든 이유라고 단정짓고 있다. 여기서 앞서 얘기한 '야마'가 작동하고 있다.

공개된 정황상 다음과 같은 기사작성 단계가 있었을 것이다. 한경 시리즈의 야마는 '최저임금의 부작용'이다. 모든 사례는 야마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한 사례나 해고된 사례만 취합한다. 야마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버린다. 자영업자 수가 600만명인데 사례 몇 개 못찾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기자가 소위 '섹시한 케이스'를 발견했다. 한 여성이 최저임금 때문에 식당에서 해고되어 자살까지 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한국에서 하루에 평균 36명이 자살하지만 다른 자살은 중요하지 않다.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한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확인이 안된다. 그렇지만 이 사례는 기사로 꼭 써야 한다. 야마에 맞으니까. 

부실한, 그리고 무리한 "최저임금때문에 해고된 50대 자살" 한경 기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해명기사에서 밝힌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제보자의 증언이다. "50대 여성이 최저임금 때문에 해고된 뒤 자살했다 카더라." 물론 기자도 노력을 했다. 사실 확인이 안됐다. 그러면 안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제보자(지인)를 익명의 취재원으로 활용해 기사를 썼다. 야마에 맞아서다. 최소한 이 기사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자살한 여성을 해고한 식당에 가서 최저임금 때문에 해고했는지 물어봤어야 했다. 한경은 구구절절 해명을 썼지만 결론은 네티즌들이 쓰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기레기'.

한경 기사는 가짜뉴스인가, 아닌가. 필자의 답변은 '중요하지 않음'이다. 앞서 폴리티컬 인사이더 기사에서 봤듯이 (악의적) 오보라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경 기자는 최초에 독자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풍문으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분노하길 바랐을 것이다. 기자는 직장인이니까 데스크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 기사를 사실로 믿기를 바랐다면 독자를 속일 의도가 있었던 것이고 '가짜뉴스'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 논란보다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언론의 고질적인 '야마잡기'다.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