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과 테크놀로지, '직접 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하다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8.09.28 10: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대 그리스는 직접 민주주의로 유명합니다.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는 시민들이 모두 아고라에 모여 토론을 하고, 투표로 결정을 했습니다. 물론 노예나 외국 출신, 그리고 여자들은 제외였으니 완전한 의미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당시의 진일보한 정치체제였습니다. 현대에도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경우로 자주 거론되는 나라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의 경우 웬만한 안건은 국민투표에 부쳐지고, 그 결과대로 시행됩니다. 동네의 일은 동네 주민들끼리 지방 행정구역-칸톤 내의 일은 칸톤 주민들끼리, 그리고 국가적 일은 국민 전체가 투표를 합니다. 스위스는 18개월 동안 1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누구나 자신의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습니다. 또 100일 동안 5만 명의 서명을 모으면 국회에서 만든 법도 국민투표를 통해 무효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인구가 적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략 800만 명이 넘는데 이 정도면 전 세계에서 98위정도 됩니다. 고대 그리스에 비하면 많아도 한참 많지요.

물론 직접민주주의라고 모든 일을 시민들의 투표로 해결하진 않습니다. 국회도 있고, 행정부도 있으니 소소한 일들은 거기서 알아서 하겠지요. 하지만 시민단체나 정당이 국민들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정책을 법안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홍보하면, 국회 내의 의석수가 적어도 국민투표를 통해 관철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016년에는 크게 이슈가 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기존 복지제도를 없애는 대신 한 명당 약 300만원을 지급한다는 거였지요. 투표 결과 부결이 되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스위스 글라루스 주 칸톤의 주민총회인 란트슈게마인데 현장. 칸톤 시민들은 이 총회를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wikimedia

직접 민주주의란 주권을 가진 시민이 직접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흔히 말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입니다. 선거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직에 뽑고, 그들이 대신 국가의 일을 보도록 하는 것이지요. 국민이 볼 때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다음 투표 때 낙선하게 되니, 정치인들은 되도록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게 될 거란 기대를 가지고 하는 일입니다. 또 정부가 하는 일이 워낙 많고 복잡해서 일반 시민들이 그 일들을 모두 검토할 수 없으니 믿고 맡기는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간접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을 보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내가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거나 차악인 경우가 많지요. 내가 투표할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 거기에 교육감까지 면면을 살펴보면, 딱 마음에 들지 않고, 공약도 불만인 지점들이 있는데, 우리의 선택지는 맘에 들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기권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직접 민주주의적 방법을 혼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투표지요.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정부나 국회가 결정하지 않고, 국민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헌법을 개정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국민발안이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법률의 개정이나 헌법 개정안을 일정한 수 이상의 국민이 모여 제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국민소환이 있습니다.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혹은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들 때 임기가 끝나기 전이라도 파면시키는 제도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투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국민발안이나 국민소환제도는 없습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주민 조례제정 개폐청구권(주민발안제)와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권리를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이니, 국민이 직접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 그에 대한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이런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이 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습니다. 국민투표라고 해본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법 개정한 것이 가장 가까운 예입니다.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지금 나이 오십이 안 된 분들은 한 번도 국민투표란 걸 해본 적이 없는 거지요. 그 전에도 다섯 번의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그 중 4번은 헌법 개정이었고, 한 번은 유신 선포와 관련한 것이었지요. 쉽게 말해서 헌법 개정 아니면 국민투표는 안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국민투표나 국민발의 혹은 국민소환 같은 걸 하면 국민들이 귀찮을까봐 그럴까요? 아님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서 돈이 아까워서일까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요. 우리가 위임한 권한을 자기들끼리만 계속 쓰고 싶은 거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이전에도 꾸준히 국민 소환제에 대한 제기가 있었고, 2017년 2월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이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 등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초 대선 때는 모든 대선 후보들이 국민소환제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글을 쓰는 2018년 9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네요. 국회의원들이 묵히고 있는 것이죠. 물론 국민투표나 국민소환제도가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히틀러도 국민투표를 했고, 박정희도 국민투표로 유신을 공고히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Populism에 악용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악용될 걸 두려워해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만들 순 없는 것이지요.

Photo by Jens Johnsson on Unsplash

어찌되었건 이 직접 민주주의를 조금 더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및 모바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술 덕분이지요.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휴대폰 보급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더합니다. 일단 국민발의나 국민소환 혹은 투표 같은 걸 하려면 사람들이 서명을 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인 걸 증빙하면서요. 전국적으로 이걸 하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서 혹은 자원봉사를 통해서 각 요지마다 일정한 절차에 따라 장소를 정하고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또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알리려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홍보도 해야겠지요.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실제 경상남도 시민단체에서 당시 도지사 홍준표에 대한 소환을 해보려 한 적이 있는데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바일이란 것이 있고, 이를 통해 인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홍보를 할 수도 있지요. 페이스북이며, 트위터, 카톡 등 좀 많은 방법이 있습니까? 서명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좌표만 찍어주고 공유하면, 가서 본인 인증하고 서명하면 끝입니다. 국민투표든 발의든 소환이든 이전보다 훨씬 쉽고 편해집니다. 예산 타령하고, 낭비니 뭐니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사용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시니 그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분들은 이미 전체 인원에서 소수이니 자원봉사자나 공무원들이 직접 찾아가거나 동네 주민 센터 등에서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직접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쓸 수 있는 스마트폰도 만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공공 통신 서비스가 활성화되기도 해야 하고요.

 

외국의 경우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직접민주주의의 시도들이 있습니다. 디사이드 마드리드Decide Madrid는 2015년에 개설된 스페인 마드리드 시의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입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마드리드 시는 예산 지출 내역과 회의 기록을 모두 공개하고, 시민으로부터 직접 정책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마드리드 시 인구의 2%(약 5만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제안은 공식 정책으로 채택됩니다. 핀란드의 ‘오픈 미니스트리open ministry’는 국민발의 제도 웹사이트입니다. 누구나 법안을 제의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5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법안이 국회로 자동 회부되죠. 법안 작성은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데모크라시OS’는 신생 정당인 인터넷파티의 활동가, 기업가, 학생, 해커 등이 개발했습니다. 정책 제안과 투표까지 누구나 들어와 이슈별 플랫폼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아시아에선 대만의 ‘거브제로’가 있습니다. 공공데이터 포탈로 국회의 입법 일정, 법안, 예산 등 각종 자료를 알기 쉽게 가공해 제공하고, 정치인의 정치기부금 내역을 공개합니다. 이 거브제로 출신의 해커인 오드리 탕이 최근 장관이 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이 꼭 이 세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2017년 중반에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문제에 대해 공론화조사가 약 3개월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공론화위원회와 시민참여단이 3개월에 걸친 토론과 몇 차례의 여론 조사를 통해 ‘이미 건설 중인 5,6호기는 건설하되 앞으로 원자력 발전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과 배치되는 이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공론조사는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여론조사로는 한계가 있는 사안에 대해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확률 추출을 통해 선정된 대표성 있는 시민들이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숙의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리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방식도 한계가 있고, 약점이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치가 ‘국회’나 ‘청와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국민 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실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론화 방식 말고도, 법안을 만들기 전에 여론 조사를 하고, 토론회를 하며, 공청회도 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해서 할 수 있으면 더 편리하겠지요.

정보 공개 또한 중요한 지점이지요.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정보공개법에 의해 정부의 행정과 관련된 사안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문서로 열람하거나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를 통해 일반 시민은 정부의 여러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통계자료들도 통계청과 기타 다양한 정부의 정보공개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조건에서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틀을 허물고 전면적인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대의제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보완하고 개선해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정보통신이란 도구를 가장 멋지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정당의 조직방식과 문화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현재만 보더라도 보수정당의 인터넷 사이트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과 노동당 등의 사이트를 비교하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질수록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소통과 의사결집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더 많은 부분에서 혁신이 있어야겠지만, 정당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의 하나로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은 대단히 유용합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의 ‘댓글 알바 30개 팀 운영’이라든가 군 기무사의 ‘댓글 부대’와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것이긴 합니다만.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2016년 10월 29일 서울 도심의 시위대. ⓒwikimedia

하지만 하나 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960년대의 4.19 70년대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 80년 광주, 87년 6월항쟁 그리고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들이 모두 직접민주주의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어떤 정부든 그는 국민의 위임에 의해 권한을 가집니다. 우리 시민이 주인인거죠. 그래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데 개선의 기미도 없고, 제도적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면 들고 일어서는 건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혹은 포탈의 게시판에서 pray for korea라고 올리고, 촛불 이미지를 올리기만 했다면 과연 이전의 역사에서 이루어냈던 승리가 가능했을까요? 온라인상의 여러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2016년의 탄핵은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든 직접민주주의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현재보다 좀 더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다양한 직접 민주주의가 더 많이 꽃 피길 바랍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