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의 '무지'와 '음모론'에서 비롯된 '선동열 국감' 해프닝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10.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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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수 선발과 관련된 일은 원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서 하는 거다. 그런데 작년 7월에 한국야구위원회(KBO)로 넘기기로 한다. 그리고 감독으로 선임이 됐다. (중략) 처음으로 전임 감독이 됐다. 전임 감독으로 하자는 것도 누가 결정했을까요.” (3분 20초부터)

 

손 의원 주장은 원래 선수 선발 권한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가지고 있는데 KBO가 월권을 했고 특정 인물이 이에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먼저 KBSA가 선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야구는 크게 프로인 KBO와 아마추어인 KBSA로 양분된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회에서는 각국 NOC(국가올림픽위원회)에 가맹한 각 경기단체들이 대표 선수를 선발한다. 한국의 NOC에 가맹한 야구 단체는 KBO가 아니라 KBSA다. 올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을 왜 프로인 KBO에서 맡았는가라는 의문은 가능해 보인다. 

12일 노컷뉴스는 이렇게 해설한다.

“실제로 손 의원의 질의를 통해 드러난 것은 야구계의 대표기관은 한국야구협회(지금은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 KBSA)지만 실제로는 구단주모임인 KBO가 감독선임과 선수선발은 물론 대표팀 감독의 연봉까지 지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상은 KBSA가 상급기관으로 감독선임과 선수선발을 해야하지만 실제로는 KBO가 KBSA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KBSA는 KBO 상급단체 아닌 독립적인 조직

하지만 손 의원의 질문은 야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왔다. 가령 축구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대한축구협회의 산하 단체로 돼 있다. 유럽 스포츠의 영향을 받은 축구는 FIFA(국제축구연맹) 산하에 각국 FA(축구협회)가 있고, 프로가 다시 FA 산하에 있는 위계적인 구조다.

반면 야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는 발상지인 미국에서 1871년 분리된 뒤 상호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 일본, 대만 야구도 모두 이렇다. KBO와 KBSA는 1982년 1월 체결된 '협정서’에서 선수 계약과 아마추어 육성 등 관계가 규정되는 사이다. KBSA는 KBO의 상급 단체가 아니다.

KBO 소속 선수가 국가대표로 뛰기 시작한 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다. 당시엔 KBSA의 전신인 대한야구협회가 선수 선발권을 가졌다. 그리고 프로로부터 선수 12명 차출을 ‘지원’받았다. 아마추어 선수는 10명이었고, 국가대표 감독은 주성로 인하대 감독이 맡았다. 코치들도 전원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경희대 투수 정대현을 제외한 전 선수가 프로로 구성됐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KBO 사무총장과 대한야구협회 전무,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선수 선발을 결정했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 가운데 프로는 21명, 아마추어는 1명이었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선수를 선발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KBO가 선수선발 담당

KBSA는 지난해 7월 18일 이사회를 열어 “협회가 주관하는 아시안게임, 프리미어12, 올림픽 등의 국제대회에 KBO리그 소속 지도자 및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파견하는 현실을 고려하여 선수단 운영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상기 대회에 대한 국가대표팀 지도자 및 선수 선발 권한을 KBO에 위임함”이라고 결정했다.

KBSA가 2017년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안. 국제대회 선수 선발과 관련해, KBO에 일임한다는 내용이다.

 

이 결정에 대해 아마추어 일각에서는 “권리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협회 재정의 상당액을 KBO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에서 국가대표팀 관리 및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여기에 이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선수 선발은 KBO 기술위원회가 담당해왔다. 아마추어 인사가 한 명씩 회의에 참석하는 방식이었다.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아시아 아마추어 야구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프로-아마 혼성팀이 출전한 한국에 결승전에서 1-13으로 참패한다. 전원 사회인야구 선수였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고시엔으로 대표되는 학생 야구, 사회인 야구가 융성하다. 등록 선수도 많다. 하지만 방콕 대회 패배 뒤 아마추어 야구를 대표하는 전일본아마추어야구연맹(BFJ)은 프로가 출전 가능한 시드니올림픽 성적에 대한 위기감을 가졌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던 오타카키 고조는 당시에 대해 “이 경기를 지켜본 연맹 간부는 아마추어만으로는 올림픽 예선 돌파도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술회했다.

일본ㆍ대만도 중요 대회는 프로에서 선수선발 권한

그래서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부터 프로야구에 선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혼성 팀을 꾸렸다. 혼성 대표팀은 시드니 올림픽 3, 4위전에서 한국에 패해 일본 야구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그래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전원 프로 선수로 대표팀을 꾸리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선수 선발도 BFJ가 아니라 프로가 참여하는 협의체 조직인 전일본야구회의를 구성해 맡겼다. 사실상 프로에 선수 선발을 위임하는 방식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선수 선발은 일본야구기구(NPB)와 12개 구단이 출자한 국가대표 관리 법인인 사무라이재팬에서 담당한다.  

대만은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7명, 아마추어 17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프로, 아마추어 혼성팀이었지만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던 왕웨이중(현NC) 등 해외파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대만은 잦은 승부조작 사건으로 프로야구가 축소된 반대급부로 아마추어 야구가 성행한다. 그래서 1990년대 이전 한국 야구처럼 프로, 아마추어 갈등이 심하다. 이 때문에 대만 정부가 나서 대만야구협회, 직업봉구연맹(CPBL)이 협의해 대회별로 선발권을 나눠 가지도록 정리를 했다. 2017년 이후 적용된 기준은 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는 프로에서, 아시안게임을 포함한 ‘2급 대회’는 아마추어 몫이다.

즉, 프로인 KBO가 국가대표 선수선발권을 행사하는 건 동아시아 야구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병역 특례를 받을 가치가 있는가’라는 지적은 중요하다. 그동안 KBO나 구단 뿐 아니라 언론과 야구 팬들도 병역 특례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공정’이라는 화두가 스포츠에서도 제기됐다. 시대에 맞지 않고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제도는 바꾸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KBO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선수 선발권을 가지는 건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왼쪽)과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방송 캡쳐

손혜원 의원이 선수 선발권 자체를 문제삼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됐던 선동열 감독과의 질의응답이 끝난 뒤 그는 증인으로 출석한 양해영 KBSA 부회장에게 질의를 했다. 양 부회장은 지난해까지 KBO 사무총장을 지냈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손 의원이 ‘야구계 적폐’로 거론한 인물이다.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위워회 국정감사 국회영상회의록 시스템 영상. [전체보기 3] 1시간 48분 10초부터)

“20여년 전에 김기춘 전 실장의 비서관 출신이던 양해영은 정권이 바뀌고 실세가 바뀌어도 살아있는 야구계의 불사조다. 전설은 아니고. (중략) 이분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야구계를 한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셨던 분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하는데, 선동열 감독은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잘못 생각했다. 다 한편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작년 국감에서 내가 저분들(구본능 KBO 당시 총재와 양해영 당시 총장) 연임을 저지했다. 2017년에 자기들이 선수선발권을 다 넘겨놨다. 김응용 회장, 선동열 감독 인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달라.”

'김응용 KBSA 회장 선임 음모론'까지 거론한 손혜원

KBO의 선수 선발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2017년 KBO 사무총장이던 양해영씨가 모종의 의도로 ‘작업’을 한 결과이며, 여기에 선동열 감독이 연루됐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권은 이미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KBO가 주도적으로 행사해 왔다. ‘모종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김응용 회장은 2016년 KBSA 선거에서 ‘야구인 회장이 뽑혀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자동차 CEO 출신 이계안 전 국회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으며, 국가대표팀 감독 인선은 당시 양 부회장이 총장으로 있던 KBO의 권한이다.

손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도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 전 차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양 총장은 승승장구하면서 다음을 위해 비상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양해영 부회장은 김기춘씨가 KBO 총재를 지내던 시절 총재 비서, 이후 1년 9개월 동안 김기춘 의원 비서관을 지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손 의원은 양 부회장이 ”우리나라 야구계를 한 손에 쥐고 좌지우지했다“는 데 대한 입증을 한 적은 아직 없다. 

거악과 연결된 세력이나 인사가 막후에서 여러 악행을 배후조종한다는 건 전형적인 음모론의 문법이다.

*2018년 10월 12일 오후 8시 25분 1차 수정: 오탈자 수정 및 중간 제목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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