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제한으로 재미있는 농구를?

KBL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논란

  • 기사입력 2018.04.22 06:48
  • 기자명 송영훈 기자
한국프로농구(KBL)의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조치가 논란이다. KBL은 다음 시즌인 2018~19시즌부터 한 팀에서 뛰는 두 명의 외국인 선수 중 장신은 2m 이하, 단신은 186㎝ 이하로 키를 제한키로 했다. 기존 선수 중 2m가 넘는 선수는 신장 재측정을 통해 2m 이하일 경우에만 KBL 구단과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한 논란들을 확인했다.

 

JTBC 방송화면 캡처

 

해외에서도 논란인 '이상한' 상황

지난 5일 이 같은 조치가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 등의 해외 매체가 이 소식을 해외토픽으로 전했고, 해외의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Too tall for basketball: American player exceeds Korean league height limit(농구하기에는 너무 큰 키, 한국 리그 신장 제한을 넘긴 미국 선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KBL의 ‘특이한’ 규정이 빚은 상황을 보도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한국프로농구를 떠나게 된 데이비드 사이먼의 황당한 상황을 전했다.

KGC소속이었던 데이비드 사이먼은 이번 시즌 득점 1위, 리바운드 4위를 기록한 대표적인 외국인선수였다. 사이먼은 두 차례에 걸쳐 신장을 측정했으나 202.1㎝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한국을 떠나게 됐고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함께 뛴 많은 선수들이 작은 차이로 신장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며 “규정이 바뀌기 전에 다시 한국에서 뛸 수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외국인선수 신장제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KBL의 외국인 선수 선발제도는 자주 바뀌었고, 키를 제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외국인 선수 도입 및 출전 규정은 총 14차례나 바뀌었다. 약 1년여에 한 번 꼴로 규정이 변한 셈인데 가장 오래 지속된 규정은 2012-13 시즌 도입된 ‘드래프트 선발에 외국인 선수 2명 보유, 1명 출전’으로 3년간 적용됐다.

97년 각 팀은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외국인 선수를 2명 보유할 수 있었고 이들 모두 출전이 가능했다. 신장의 경우 장신은 203.2cm 이하, 단신 190.5cm 이하로 제한됐다. 당시 국내 최장신인 서장훈 선수가 데뷔한 98-99시즌에는 장신 205.7㎝ 이하, 단신 193.5㎝ 이하로 규정이 완화됐다.

2000-01 시즌에는 장단신 제도가 폐지되고 신장 합산 규정이 생겼다. 외국인 선수의 신장은 208.28㎝ 이하로 하되, 팀별 외국인 선수 2명의 신장 합계는 398.78㎝ 이하로 제한했다.

2002-03 시즌엔 2쿼터에 외국인 선수 1명만 뛰게 했고 2004-05 시즌부터 자유계약 제도를 적용했다. 이 때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은 또 바뀌었다. 장신은 208㎝ 이하, 선수 2명의 신장 합계는 400㎝ 이하였다.

2007-08 시즌 다시 드래프트가 시행됐다. 221㎝의 하승진이 데뷔하면서 2008-09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신장제한이 폐지됐다. 대신 외국인 선수 보유·출전 규정은 2009-10 시즌 이후 3차례나 바뀌었고 2011-12 시즌 자유계약 제도가 재도입됐다. 2012-13 시즌부터 다시 드래프트가 열렸고 2015-16 시즌 장단신 제도가 부활했다.

 

경기를 재미있게? 국내선수 보호?

KBL은 빠르고 기술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장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플레이가 자주 나온다면 경기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는 취지도 포함됐다.

KBL은 신장 제한이 경기 속도와 평균 득점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구 경기의 진행속도가 빠르면 득점이 많아지고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질 여지가 커진다.

KBL은 신장 제한이 이뤄지지 않은 시즌에 팀당 공격 횟수를 뜻하는 페이스(pace)가 70 이하로 떨어졌다며 pace 하락이 평균 득점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실제로 신장 제한 정책과 맞물려 단신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2015-2016시즌부터 페이스와 평균 득점이 늘어났다. 조 잭슨 등이 활약한 2015~2016시즌 페이스는 70.1회, 평균 득점은 78.8점이다. 2016-2017시즌의 페이스는 71.7회, 평균 득점은 79.1점이고 최근 막을 내린 2017-2018 정규리그의 페이스는 73.9회, 평균 득점은 84.1점이다.

단신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 6시즌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 기간 평균 페이스는 68.5회, 평균 득점은 75.8점이다. 2014-2015시즌의 경우 페이스는 68.6회, 평균 득점은 74.6점이다.

그러나 JTBC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신장 제한이 없었던 시기에, 평균 득점이 준 자체는 맞지만, 2008~2009시즌부터 2014년까지 경기당 평균 득점을 보면,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이 시기에 신장 제한을 안 하는 대신에 외국 선수의 출전시간을 제한했다. 신장 제한이 부활한 2015년부터는 반대로 외국 선수의 출전시간이 늘었다. 결국 키를 떠나 득점을 많이 하는 외국인 선수가 얼마나 뛰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골과 흥행에 관련해서는, 2012년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2012년 경기당 평균득점은 73.4점으로 매우 낮았지만, 역대 최다인 133만명이 농구경기장을 찾아 가장 흥행에 성공한 해였다. 반면에 2015년부터는 평균 득점이 꾸준히 늘었지만 관중 수는 떨어졌다.

키 제한과 점수, 그리고 흥행 사이의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외국인 선수만 차별적으로 제한을 하면 한국 농구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해 신장제한을 하는 국가는 또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프로농구리그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터키, 아르헨티나, 필리핀, 일본, 중국 등인데, 신장에 제한을 두는 사례는 드물다. 한국과 필리핀뿐이다.

필리핀 프로농구는 1~3차 대회로 나눠서 치르는데, 차수 별로 출전 선수 기준이 다르다. KBL에서도 이번 제도를 만들 때 필리핀의 사례를 참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대회에는 자국선수만 출전이 가능하고, 2차 대회부터는 외국인선수도 출전이 가능하다. 모든 외국인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2개의 팀 중 1차 대회 상위 8개 팀은 195.6cm이하의 외국인선수를 기용할 수 있고, 하위 4개 팀은 신장제한 없이 모든 외국인선수기용이 허락된다.

3차 대회도 마찬가지다. 3차 대회부터는 아시아쿼터제가 적용돼 아시아선수 중 193cm이하인 선수도 기용할 수 있다. 인천 전자랜드 출신의 김지완 선수가 이 제도를 통해 현재 PBA에 소속돼 있다. 외국인선수 기용에 대한 제한은 2차 대회와 같다. 1차 대회와 2차 대회 결과를 합산해 상위 8개 팀은 195.6cm이하, 나머지 네 팀은 제한 없이 영입할 수 있다,

이처럼 필리핀 프로농구리그는 다양하고 체계적인 규칙을 적용해 리그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며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KBL의 운영미숙 지적 목소리 높아

KBL의 이번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으로 외국인선수들이 키를 줄이려는 소동이 일었고, 또 2m가 넘지 않아 국내 잔류가 가능해진 선수 가운데, 단신 기준인 186cm을 넘는 선수들의 포지션에 따라 재계약이 불투명한 경우도 생겼다. 슈팅가드로 활약이 뛰어났지만, 장신 선수들이 주로 맡는 센터나 파워포워드를 맡기에는 키가 작은 경우다. 서울SK의 테리코 화이트는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22점·5리바운드·6어시스트를 기록해 80-77의 팀 승리를 이끌며 팀에 18년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안겼다. 챔피언결정전 6경기에서 평균 25.0점·5.3리바운드·7.5어시스트의 기록으로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지만 현재 재계약이 불투명하다.

프로농구는 최근 지속적인 인기 하락을 보이고 있다. 올 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 평균 관중수는 2796명으로 원년 이후 20년 만에 3000명대 이하로 추락했다. 방송중계 시청률도 배구 등의 경쟁 종목에 밀렸다. 여러 원인이 지적되고 있지만 KBL의 권위주의적 행정과 낡은 콘텐츠 기획력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송영훈   sinthegod@newstof.com  최근글보기
프로듀서로 시작해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시민을 위한 팩트체크 안내서>, <올바른 저널리즘 실천을 위한 언론인 안내서> 등의 공동필자였고, <고교독서평설>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KBS라디오, CBS라디오, TBS라디오 등의 팩트체크 코너에 출연했으며, 현재는 <열린라디오 YTN> 미디어비평 코너에 정기적으로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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