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왜 비핵화와 핵 폐기를 구분 못하나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5.0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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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의 영어 팩트체크] 4.27 판문점 선언, Dismantlement와 Denuclearization은 어떻게 다른가

4.27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일부 야당의 비판이 거세다. 특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독설에 가까운 혹평을 남겼다. 

 

이들 야당 정치인들의 비판은 상당 부분 '핵 폐기' 혹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홍 대표는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을 폄하했다. 나 의원 역시 "판문점 선언은 비핵화 선언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의 선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에 북핵 폐기의 내용이 없다는 홍 대표나, 판문점 선언이 비핵화 선언이 아니라는 나 의원의 주장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핵 폐기나 비핵화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어로 '핵 폐기'는 nuclear dismantlement로 번역된다. 동사 dismantle은 '분해하여 해체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제거'를 뜻하는 접두사 [dis-]와 껍데기, 덮개, 꺼풀을 의미하는 [mantle]이 합쳐진 형태다. 즉, 어떤 것의 덮개나 외형을 제거하여 속 알맹이를 들어냄으로써 분해하여 해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아이폰 뚜껑을 dismantle 하는 모습.

따라서 nuclear dismantlement는 핵무기를 분해하여 해체함으로써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군사력 축소 즉, 군축(disarmament)의 일환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핵 폐기'다.

한편 '비핵화'는 영어로 denuclearization이다. '핵을 없애다'라는 의미의 동사 denuclearize는 제거를 뜻하는 접두사 [de-], 핵을 뜻하는 [nuclear], 그리고 변화를 뜻하는 접미사 [-ize]의 조합이다. 언뜻 핵 폐기(dismantle)와 동의어처럼 보이지만, denuclearization은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봐야 한다. denuclearization(비핵화)에는 첫째, 핵무기의 폐기, 둘째, 핵무기 제조와 배치의 금지 등 2가지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해, 기존에 만들어 둔 핵무기는 폐기하고, 앞으로도 절대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아주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비핵화'는 '핵 폐기'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넓은 의미이다. 홍준표 대표의 주장처럼 판문점 선언에는 '북핵 폐기(dismantlement)'란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인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이 항목 3-4에 명기되어 있다. 

"South and North Korea confirmed the common goal of realizing, through complete denuclearization,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한다면 '핵 폐기'는 물론이고, 미래의 핵무기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아직 핵보유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북한은 이미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적 견해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미국이 강하게 부인해 왔고, UN 역시 그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낸 적이 없다. 핵보유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해체해야 할 핵무기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존재하지도 않는 핵무기를 어떻게 없앨 수 있나? 따라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는 홍준표 자한당 대표의 비판은 무의미하다.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한 북한이 공식 선언문에서 '핵 폐기'를 언급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북한에게는 '비핵화'를 요구해야 맞다.  결국 complete denuclearization(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겠다는 판문점 선언은 매우 정확하고 적절하다. 

사실상 이런 혼란의 책임은 일정 부분 미국이 져야 할 것 같다. 미국은 변함없이 북한에게 핵무기의 CVID 즉,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폐기(Dismantlement)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핵 폐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실장은 판문점 선언 상의 '완전한 비핵화'가 결국 미국이 이야기하는 CVID와 동일한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핵 폐기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항구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비핵화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막연히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이야기했다"는 나경원 의원의 비판 역시 억지주장이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면, 북한이 혹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핵무기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될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 다만 합의사항의 실체적인 준수 및 이행 여부는 5월 말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으로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4.27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서명식 장면. 출처:청와대

판문점 선언이 정치적 이념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많다.  그러나, 우리 국민 10명 중 9명 가량이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Panmunjom Declaration)'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역시 90%에 육박한다. 정전 65년만에 찾아온 평화와 번영의 기회가 봄날의 꽃처럼 만개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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